고향 생각
해평리 마을 복판 정미소는
큰아버지네 것이었는데
아버지 친구 마센 아재가 이를테면 공장장이었지.
기계 뱃속 같은 정미소 복판에 서서
온갖 소리와 희뿌연 먼지를 지휘하며
고래고래
흰 눈썹을 치켜뜬 채 악을 썼지.
통통통….
이어져 돌아가는 붉은 창자들을 지휘했어.
창자들은
공간 곳곳의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무 곽 속으로
끊임없이 들어가고 나오고….
아무튼, 마센 아재의 그 위용이 장비쯤 될까.
그 정미소 자리 같은데...
그때가 명절인지 제사인지
광주에서부터 청주까지 사 들고 간 막내인 아버지는
큰아버지와 대판 싸우더니
내 손을 붙들고 마센 아재 집으로 갔지.
밤이 되어 기차가 끊어졌거든.
씩씩거리며….
아, 당시 바닷가 쪽은
특히 독백이거나 독백인 체하는 욕이 좀 쎘어.
이 ‘욕설’은 감탄사의 일종이지만
다음 말을 잇는 접속사 같은 역할도 있지.
그때 늘 흰 한복이시던 우리 할머니는
두 아들 사이에서 애타게 다툼을 말리셨고.
아무튼, 당시 도청 공무원을 하셨다는
그 무서운 큰아버지와 다툴 수 있는 이는
득량 바닥에
자랑스럽게 우리 아버지뿐이었지.
흐흐흐….
나는 다른 사촌들에게 우쭐대며
당당하게
무릎 높이 대문턱도 폴딱 뛰어넘어서 갔지.
그래도 아버지가 유비쯤 될 거야.
삐진 것은 좀 그렇지만
그 시절 그 촌에서 대학까지 나오셨고
또 수염이며
아무래도 큰아버지가 관우를 닮았으니 말이야.
그런데 재산 문제였을까.
땅 문제 말이야.
땅 때문에 국가도 개인도 뒤지게 싸우지.
그것이 역사의 주된 소재이고 말이야.
또 땅을 넓히는 것이 영웅의 짓이고 통일이었지.
촉 삼 형제의 노력도
오봉산 빨치산의 바람도
아버지의 다툼도
일맥 같은 거야.
땅은 풍요고 다툼이고….
모르겠어.
그저 잠들기 전 고향 생각 한 도막이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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